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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작성일 : 15-08-20 13:46
톨스토이처럼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선물이 된다
 글쓴이 : 관자재…
조회 : 8,224  
[지식 콘서트]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 - 성장없는 사랑에 매달려 自殺이라는 파국 맞아
어떻게 살 것인가 -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하는 삶을 삶아야
최고의 행복은 융합과 일치 - 타인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들 인생을 예찬해야

톨스토이는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는 사상가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더 많이 고민했고, 그 고민은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문학 속에 답을 하나 마련해 두었는데 그 답은 바로 '성장'이다. 그는 성장을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

톨스토이에게 성장이란 일단 나에게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나 자신과 훌륭한 관계를 맺으면서 더 나은 최선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 여기에서 성장이 시작된다. 그런데 나라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와 너의 관계, 나와 타자의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결국 톨스토이에게 성장이란 나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해 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완결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장은 그 자체가 과정이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다. 다시 말하면 변화해 가는 과정,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그의 대표작인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짚어보도록 하겠다. 1877년 출판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연애 소설 혹은 불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안나가 아니라 톨스토이가 자기의 분신으로 설정한 레빈이라는 청년이다. 그 청년의 성장 과정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다.

*안나 카레니나의 자살은 성장 없는 사랑 때문*

아름답고 친절한 안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고위 관료의 젊은 아내다. 그런데 어느 날 모스크바에 사는 오빠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자 오빠 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간다. 모스크바 역에 내린 안나는 브론스키라는 매우 잘생긴 젊은 청년 장교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안나는 결국 남편과 자식, 사회적인 명성도 버리고 브론스키와 내연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안나는 브론스키가 혹시 자기를 버릴까 봐, 그의 사랑이 식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근거도 없는 질투를 해서 브론스키를 힘들게 하고, 불안에 떨고 나중에는 노이로제 증상까지 보이다가 결국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안나의 오빠 스티바에게는 레빈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스티바의 처제인 키티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데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가 있었기에 거절한다. 브론스키가 안나와 내연 관계로 들어가자 키티는 절망한 나머지 병에 걸린다. 독일 온천에 가서 회복한 뒤 러시아로 돌아온 키티는 다시 레빈의 청혼을 받자 수락하고 결혼을 해서 이상적인 삶을 향해 나아간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처음부터 발전의 여지가 없는 사랑이다. 톨스토이에게 욕구 충족에서 출발한 사랑은 더 이상의 성장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나와 브론스키는 변함없는 사랑에만 매달려 있다. 이 사랑은 변화가 없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못 얻을 때는 브론스키를 증오하게 되고, 브론스키는 안나가 자기한테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 안나가 짐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니 증오하게 된다. 결국 두 남녀는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얘기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은 증오를 숨긴 상태가 지속된다. 안나의 자살은 증오에서 오는 자기 학대였다. 이 두 사람의 사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장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하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안나는 변함없는 사랑을 원하는데, 그것은 순리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행해지고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

반면 레빈과 키티는 성장하는 삶을 산다. 둘은 결혼한 처음에는 상당히 많이 괴로워한다. 의심도 하고, 질투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소통하고, 이상적인 가정, 공감하는 가정 그리고 기쁨이 있는 가정을 향해서 나아가게 된다.

레빈의 성장 단계는 세 가지다. 우선은 몰입이다. 그리고 소통을 하고, 그다음에는 죽음을 기억한다. 이 세 가지는 강의 초반에 말했던 나와 나의 관계, 나와 세계와의 관계, 변화에 대한 이해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몰입이란 자기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레빈은 소설 중 풀베기 장면에서 이것을 체험한다. 지주인 레빈은 어느 날 직접 풀베기를 하기로 작정한다. 진심으로 농부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풀베기 과정에서 그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풀베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자아가 해방되는 경험을 한다.

'그가 하는 일에는 지금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는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일이 쉬워졌다.'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 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레빈이 자아에서 해방되고 자기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그는 비로소 외부, 타자, 세계와 교감을 할 수가 있었다. '레빈은 농부들에게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주인에 대한 어려움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레빈은 영감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잔뜩 흥미를 느끼며 그의 집안일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형보다 영감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톨스토이는 소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다른 저서 '인생의 길'에서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라고 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공감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톨스토이와 일맥상통한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죽음을 기억하면 삶은 풍요로워진다*

톨스토이는 죽음의 체험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다. 세 살 때 어머니, 열 살 때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주 좋아하던 형도 35세 때 떠나갔다. 그 자신도 58세 때 마차에 치여 사망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었다. 그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자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공부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레빈 역시 죽음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한다. 소설 끝에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정말 좋아지는 무렵에 그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절망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앞길에는 고뇌와 죽음과 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이 작품을 쓴 후에도 죽음에 대해 골몰하던 톨스토이가 실제 삶에서 발견한 해답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반드시 죽을 거라는 걸 기억한다면 지금 이 현재가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죽음을 기억하게 되면 현재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진다. 순간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간과 함께 더불어 살면 시간은 모든 지나간 상처를 치유해 주는 치유의 힘이자 신의 선물이 된다.

인생의 뒤안길에는 상처도 있고 슬픔도 있고 고뇌도 있다. 이루어지지 않는 욕망, 배신, 좌절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결국은 흘러가며, 어느 때인가는 시간에 의해 치유된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다.

레빈은 소설의 끝에서 이것을 이해했다. '나의 생활 전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관자재요양병원 사회복지사)